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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과대서양을잇는 파나마 운하

윤숙! 2013. 3. 9. 11:44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스에즈 운하를 성공시킨 프랑스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가장 단거리인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의 일이다.3단 도크식으로
 물 수위를 8.5m씩 낮춰 통과하는 선박들
대서양과 태평양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과 116m의 높은 암반 이 있는 산을 뚫는 
일이가장 큰 문제였다. 공사 중 2만여명이질병, 
안정사고로 죽어갔고 프랑스는 결국 부도를 내고
공사가중단되면서 미국이 다시 인수를 하게 되었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 통과하는 파나마 운하,통과를
기다리는 선박 미국은 전 세계 건설 전문업체 
43개를 초빙하여 10년동안 건설하여 1914년에
 완공하게 된다.파나마 운하를 잇는 구역을 
미국령으로 만들고 운영권도 확보하게 된다.

8대의 괘도 차량이 벽면에 부딛치지 않게 양쪽에서 
유도 파나마 운하의 조수 간만차를 해결하기 위해 
내륙에 80km 구간을인공호수로 만들고 양쪽에
각각 3개의 수문을 만들고 계단식 도크를 만들었다.
수문의 높이는 8.5m, 폭 35m, 길이 305m, 12m의
물 깊이 3단 수문을 양쪽에 각각 만들고 전체 수위 
26m를 수위를조절하여 이동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파나마 항을 중심으로 신도시에 대형 금융빌딩이 즐비 
1964년 파나마 한 고등학교에 미국 성조기와 파나마기를 
동시게양하지 않고 성조기만 게양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파나마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생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이를 말리려던 군인이 발포하면서 23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사건으로 파나마 시민의 
반미데모로 확산되면서 미국과 파나마 간의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파나마 항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이 신도시와 조화 결국 
1977년 파나마 또리호스와 카트대통령간의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운하의 모든 권한을 파나마에 이양하고 
미국은 파나마에서완전 철수하게 되었다. 이로서 파나마
운하 소유권은 1999년 완전히 파나마로 넘어가게 되었다.

파나마 구시가지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성당
파나마는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현재 파나마 운하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 공사에 한국의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고한다.
한편 미국이 완전 철수한 뒤 운하 도선 전문가가 
없던 차에 한국의 전문가 한분이 파나마에 
기술을 이전하는데 크게기여함


구시가지에 고풍스런 빌딩과 파나나 동식물 조각상
파나마는 태평양과 카리브 해를 잇는 운하가 있어
세계물류이동의 중심지다. 인구 320만의 한반도 
크기의 작은나라로 수도 파나마시는 인구
 150만명이 모여 사는 국제 금융도시다.

세계금융허브, 운하의 도시 파나마씨티

중남미 정복의 거점기지로 역할을 한 파나마 옛 도시
세계은행이 모두 모여 있는 이곳은 스위스의 은행과 
같이 비밀이보장되어 중남미의 마약 마피아 단이
 연루된 검은 돈이 유통되기도 한단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신시가지는 뉴욕의 
마천루를 연상한다. 1999년 파나마운하의 운영권이
미국에서 파나마로이관되면서 최근 파나마는
연 평균 10%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파나마 구시가지 중앙광장 파나마는 스페인의
발보아 총통이 취임하면서 식민지로 출발하였다.
세계 40여개 민족이 혼합된 짬뽕문화이지만 
미국과인접해 미국의 문화를 많이 받고 있다.

파나마 항 건너보이는 붉은색 대통령 궁 모습
따라서 하루 40척이 지나갈 경우 어림잡아 
100억원의 수익이발생한다. 선박의 경우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으로 갈 경우 30일이나 
걸리지만 운하를 이용하면 13시간이면 
완전 통과할 수 있다.

파나마운하의 주변 모습들
 
2013. 3.9 yoon.sook 류태영님이 보낸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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